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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

난생처음 도전한 하프마라톤 (2018.09.31)

by 이불밖은궁금해 2020. 1. 30.



 

달서구 하프마라톤

<2018.09.31 대구 달서구 하프마라톤 참가후기>

정각 9시에 시작하는 하프마라톤. 8시쯤에 도착해서 넉넉하게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스트레칭도 충분히 하고, 가볍게 5~10분 정도 워밍업도 하고, 몸상태 체크하고, 물도 충분히 마시고. 보통 그렇게들 한다.

 

준비운동 헛둘헛둘

하지만,, 아침에 꾸물대다 보니 늦어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원래 지각에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8시 30분쯤 대회장에 도착을 했다. 역시 사람이 엄~청 많더라. 은근히 신이났다.

출발 전, 신발에 기록 측정용 칩을 부착해야 한다. 근데 그걸 깜빡하고 짐을 보관소에 맡겨버렸다. 뒤늦게 발견하고 짐을 다시 찾아서 칩을 부착하고 짐을 맡겼다.

그리고 허겁지겁 스트레칭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몸풀기로 뛰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출발 직전 화장실도 가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다. 다음번 마라톤을 할 때는 대회장에 꼭 일찍 오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드는 몸상태로 출발선에 섰다. 그래도 같이 뛰는 사람도 많고 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둔 음악을 재생시켰다. 평소 운동하며 듣는 것들 중에 10곡가량을 골라서 세팅해놨었다. 최대한 둠칫둠칫 하는걸로

출발! 신호와 함께 사람들이 후두두루루루ㅜㄹ 뛰쳐나갔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들떠있었다. 참 이상하게도 없던 승부욕까지 생기더라. 그래서 내 주제를 모르고 그 사람들을 하나둘씩 빠르게 제쳐나갔다.


하프마라톤은 21킬로를 달려야 하므로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초반에 욕심을 내서 너무 무리를 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숨이 찼다. 초보자들이 흔히 실수하는 오버페이스가 나온 것이다. 마라톤은 같은 페이스로 계속 달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다 힘이 남으면 후반에 페이스를 올리더라도. 

연습 때는 하루에 적게는 7킬로 많게는 15킬로 정도를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21킬로를 달리려면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달려야 했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빠르게 달려버렸다. 이게 참..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해보니 페이스 조절이라는 게 쉽지 않더라.

그렇게 오버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코스 초반부에 오르막길까지 있어서 몸에 무리를 더했다.

조금 더 가서 급수대에서 물을 조금 마셨다. TV에 마라톤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하던, 그래서 쉽게 보였던, 달리면서 물 마시는 고오급 스킬을 나도 따라 해 봤다. 입에 확 털어 넣고, 종이컵 확 찌그러트리고, 제 갈길 가는 그런 시크함을 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우켁켁ㅠㅠ 물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물은 천천히 걸으면서 마시는 걸로..

어쨌든 시원한 물 스펀지를 하나 챙겨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본 페이스메이커가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였다. '페이스메이커'란 다른 선수들의 목표가 될 만한 속도로 일정하게 달리시는 분들이다. 멀리서도 보이게끔 기록(ex 1:50)이 적힌 큰 풍선을 매달고 달린다. 선수들은 페이스메이커를 보고 본인이 지금 어느 속도인지 대략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쉽게 말해 그분과 나란히 달려서 결승점을 통과하면 내 기록은 1시간 50분인 거다. 이때가 3킬로 지점이었다. 이때만 해도 오버페이스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속으로 생각했다.

'아 첫 도전에 1시간 50분이면 괜찮은데??'
ㅋㅋㅋ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메이커님이 나를 추월했다.
가지 마세요. 아저씨ㅠㅠ

여기서부터 합리화가 시작됐다. 인간은 원래 합리화의 동물이니까. '그래. 원래 목표는 2시간이었잖아.'

달리는 도중 뒤를 돌아보니,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아직 저~ 멀리 보였다. 후후후.. 하지만 2분쯤 지났을까? 이내 달리기를 멈춰버렸다.. 오버페이스의 부작용이 벌써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가 겨우 5킬로 지점이었다. 갈길이 16킬로나 남은 상황. 최악의 몸상태였다.

충분한 워밍업 없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급하게 달려버리면 옆구리가 쿡쿡 쑤신다. 뭘 먹고 바로 뛰어도 그렇다. 학창 시절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횡격막에 통증이 있는 거라고 한다.

원래 계획은 최소한 10킬로, 많게는 15킬로 이상 걷지 않는 것이었는데, 옆구리가 아파서 도저히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은 어찌나 덥던지 대회날은 9월 30일이었는데, 체감은 그냥 한여름이었다. 신발에는 뭐가 들어갔는지 옆부분이 쿡쿡 찔렸다. .. 이렇게 핑계라도 늘어놓아야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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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갔다. 심지어 반대편에는 이미 1차 반환점을 돌고 2차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슈퍼맨들이 보였다. 마치 한 마리의 치타 같았다. 보폭 또한 상당했다. 어떻게 저 보폭을 유지하며 저 속도로 달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음. 피부를 보니 흑인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해를 했다.

어쨌든 다시 힘을 내서 7킬로 지점을 통과했다. 뒤를 돌아보니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어느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제 이만큼 오셨지?? 나는 2시간 페이스메이커님을 술래라고 생각하고, 잡히면 안 되는 것처럼 빠르게 도망갔다.

8~10킬로 구간.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옆구리 통증과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햇볕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헥헥.. 이때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뭘 보면서 달렸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래 사람은 몸이 힘들면 별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적을 말도 없다.

그 마의 구간을 얼렁뚱땅 통과하고, 11킬로 구간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반밖에 안 남았구나! 하며 힘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이런 냉정한 몸뚱이를 봤나.


슬슬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씩 느려졌다. 그래도 굳이 걸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때마침?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음악소리가 나오지 않길래, 아 이거 왜 이래! 하면서 못 이기는 척 달리기를 멈추고 이어폰을 껐다 켰다. (=잠깐 쉬었다.)

이때쯤 나를 추월하신 분이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시각장애인 분이었다. 가이드러너와 끈으로 연결 후, 21킬로 마라톤을 달리는 것이다. 사지 멀쩡 한 사람도 하기 힘든 게 마라톤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 긴 거리를 달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힘들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존경스럽고 대단했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뛰어야지! 크게 다짐을 했지만, 이 어리석은 몸뚱이는 내 다짐이 들리지 않나 보다. 어느샌가 2시간 페이스메이커님이 내 옆까지 쫓아오셨다. 계속해서 페이스가 느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했다. 여기서부터는 뒤처지지 말고,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한테는 진짜 잡히지 말자! 이때가 15킬로 지점이었다. 결승선까지 6킬로가량이 남았다. 이제 더 이상 옆구리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의 체력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초반의 오버페이스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빨리 한계점에 도달했다. 

연습 때 아파왔던 부위들이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마라톤 경기장에는 코스 곳곳에 파스를 뿌려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전까지는 괜찮았지만 이때부터는 만날 때마다 파스를 뿌렸다.

그렇게 팔다리를 마비시키고, 무거워진 몸을 별생각 없이 움직여댔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듣던 음악도 무슨 소귀에 경읽는 느낌이 들어서 꺼버렸다. 소야 니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마라톤 준비할 때의 그 으라차차 하는 기백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때부터는 정말 좀비처럼 으헣허헣 하면서 달렸다. 물론 속도는 좀비보다 한참 느렸다.

마라톤을 흔히 한계를 경험하는 스포츠라고 하는데, 아 그 한계가 여기구나! 를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걸 느낀 이유는 신체적 한계를 경험했지만 그와 동시에, 앞으로 더 훈련해서 그 한계를 극복하면 어떤 기분 일까? 하는 변태 같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한계를 극복했을 때의 짜릿함을 상상한 것이다. 마라톤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쉽게 이해가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나도 경험해보고서야 알았다.

결승선을 2~3킬로가량 남겨둔 지점에서, 응원차 가수분이 오셔서 노래를 불러주셨다. 노래는 황진이였다. 내일이면 간다~ 이 부분이었다. 난 지금 하늘로 가겠는데..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빵빵하게 튼 것 같았다. 가까이서 들으면 귀가 아플 정도로..ㅜㅜ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마지막까지 힘을 짜냈다.

초반에 만났던 오르막길을 다시 만났다. 여기가 지옥이구나.. 하면서도 여기만 통과하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성큼성큼 달려 나갔다. 사실 마음만 성큼성큼이지 실제론 깨작깨작이다.ㅋㅋ

결승선을 1킬로 미만 남겨놓으니, 본부의 방송이 들리기 시작했다. 순위권 선수들의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다.

거의 다 도착해서 발가락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간신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직 처음이고 초보라 그런지, 짜릿함보다는 이제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욱 컸다.  물 두 통을 벌컥벌컥 마시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기록은 2시간 17분.. 약간 아쉽긴 해도 첫 마라톤이었고, 부상 없이 완주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재밌었다. 마라톤은 수천 명이 함께 하는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경쟁 상대는 자기 자신뿐이다.  처음에 욕심을 내서 몸에 무리를 줬지만, 그 또한 값진 경험이었다. 내년엔 기록도 경신하고, 언젠가 풀코스도 도전해봐야겠다.

 

 


2018.09 운동삼아 조깅을 시작한지 2개월 차, 겁도없이 하프마라톤에 도전했었다. 그때 당시 썼던 후기를 티스토리에 옮긴다. 앞으로는 바로바로 올려야겠다. 작년 2019년 9월에도 제13회 마라톤이 열렸었지만, 태풍으로 취소가 됐었다. 복수??의 기회였는데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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